세계최초의 어군탐지기

세계최초의 어군탐지기

낚시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어군탐지기의 브랜드로는 디퍼(Deeper), 로렌스(Lowrance), 허밍버드(Humminbird) 가민(Garmin) 등이 있는데 오늘은 세계최초의 어군탐지기를 만든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되는 어군탐지기의 탄생은 군사장비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세계최초의 어군탐지기는 1948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후 연합군최고사령부(SCAP: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가 일본을 점령하고 통치를 하게 되는데 통치의 일환으로 일본의 군수산업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 SCAP를 일본에서는 통상 GHQ(General Headquarters)라고 부른다.

 

군수산업을 금지시키는 조치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많은 기술자들은 민간기업으로 이직하게 되었으며 군사용 물품들도 민간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어군탐지기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던 음향측심기도 그 중의 하나였다.

1920년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후루노 키요타카(古野清孝)는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4년 만에 중퇴하고 생업에 뛰어들게 되는데 1937년에 가전제품의 수리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1928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라디오상담소 주임기술자검증시험(ラジオ相談所 主任技術者検定試験)에 합격한 후루노 키요타카(古野清孝)는 교사를 지내고 실직상태에 있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라디오를 수리하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1938년에는 갑종전기기술자자격을 취득하여 후로노전기상회(古野電気商会)를 창업하게 된다.

이렇게 설립된 후로노전기상회(古野電気商会)는 지금은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한 후로노전기(古野電気: Furuno Electric Co., Ltd.)의 전신이 되었다.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뛰어났던 후루노 키요타카(古野清孝)는 지역에서 점차 신뢰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인 후루노 키요카타(古野清賢)가 사업에 합류하게 되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5살이 어린 동생 후루노 키요카타(古野清賢)는 1941년, 15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라디오기술검증시험에 합격하고 1942년에는 갑종전기기술자자격까지도 취득하였다.

두 사람은 주로 어선의 집어등이나 선박의 발전기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1943년, 한 명의 어부로부터 “바다에 물거품이 이는 곳에는 물고기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이런 곳을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다.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은 종전으로 인해 민간에 흘러든 군사용 음향측심기를 손에 넣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초음파를 이용하여 어군을 찾아내는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1947년 4월, 첫 번째 어군탐지기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바다의 물거품을 감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엔진의 진동마저 감지함으로써 협력을 해주던 어부들이 등을 돌리는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여 마침내 1948년 12월에는 합자회사인 후루노전기공업소(古野電気工業所)를 설립하고 생산한 어군탐지기의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초기의 어군탐지기

하지만 당시 대당 가격이 60만엔이나 되었고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어부들로부터 반품이 쇄도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당시 오도열도에서 가장 어획량이 나쁜 배로 정평이 났던 마스토미마루(枡富丸)와 손잡고 1949년 5월부터 어군탐지기를 탑재하여 마스토미마루(枡富丸)가 만년 꼴찌에서 벗어나 3개월 연속으로 1위의 어획고를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성공을 바탕으로 1949년 10월에는 이와세우라(岩瀬浦)의 전체 선단이 두 사람이 만든 어군탐지기를 배에 탑재하게 되었고, 어군탐지기를 탑재하지 않았던 나라오(奈良尾)선단보다 월등하게 많은 어획고를 올리게 된다.

1949년 11월, 두 선단의 어획고를 보면 어군탐지기를 탑재한 이와세우라(岩瀬浦)선단이 최고 3만3천 상자, 최저 1만3천 상자를 기록한 반면에 어군탐지기가 없었던 나라오(奈良尾)선단은 최고 1만1천 상자, 최저 500상자를 잡는데 그침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발판을 다지게 되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일본의 후루노전기는 2013년에 우리나라에도 자회사인 후루노코리아(주)를 설립하여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전 세계 조선업의 불황으로 향후의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특히 어군탐지기의 경우에는 1985년에 이루어진 플라자합의로 엔고가 이어지고 일본근해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대량으로 판매되던 호황기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포츠담선언에 따라 연합군의 진주(進駐) 결정되자 화약이나 총기류를 제외한 군수물자를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에 비밀리에 민간에 방출한 일본정부의 결정이 어군탐지기의 탄생에 크게 일조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꼭 기억하였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