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글은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포스팅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세계의 스피닝 릴 역사에는 스코틀랜드의 피터 말록(Peter D. Malloch)이 1884년에 취득한 특허가 최초라는 영예를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 아몬드뱅크(Almondbank) 출신으로 1875년부터 중부도시 퍼스(Perth)에서 박제사로 활동하면서 낚시용품 판매를 겸하고 있던 피터 말록(Peter D. Malloch)이 특허를 취득하고 판매를 했던 릴은 사이드 캐스팅 릴(side casting reel)이란 이름으로 판매가 되었다.
이 릴은 아래의 사진과 같이 캐스팅할 때는 스풀을 90° 회전하여 라인이 방출되도록 하였고(첫 번째 사진), 감을 때에는 다시 90°를 돌려(두 번째 사진) 기존의 플라이릴과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스피닝 릴의 역사와 베일 이야기’에서 소개한 것처럼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특허를 취득했던 것이 최초의 스피닝 릴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시에도 설명하였지만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가 1905년에 만든 최초의 릴 No.1(Illingworth No.1)보다는 베일을 개정하여 1910년에 새롭게 특허를 취득한 두 번째 릴 No2.(Illingworth No.2)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스피닝 릴의 형태와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터 말록(Peter D. Malloch)이 개발한 사이드 캐스팅 릴(side casting reel)이 세계최초라고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Illingworth No.1
Illingworth No.2
이렇게 세상에 선을 보인 스피닝 릴은 넓게 보면 영국이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프랑스의 미첼이 세계최초라고 하는 잘못된 정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세계의 스피닝 릴에 대한 연재를 마치면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현재의 스피닝 릴과 같은 완전한 형태의 베일을 갖춘 제품에 대하여 영국의 하디(Hardy)가 특허를 취득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미첼에서는 베일이 반만 있는 형태의 하프 베일(half-bail) 미첼 300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첼이 최초로 스피닝릴을 만들었다는 정보가 검색되는 이유는 제2차 대전이란 역사적 사건이 자리를 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방직업을 경영하고 있던 알프레드 홀덴 일링워스(Alfred Holden Illingworth)는 1905년에 특허를 취득하여 20년 동안이나 독점적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나 기한의 만료와 함께 유럽의 많은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스피닝 릴의 생산에 뛰어들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스피닝 릴을 만들었냐 하면 당시에는 특허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1929년을 기준으로 이탈리아에만 주께띠(Zucchetti)라는 회사를 필두로 모두 100여 개가 넘는 스피닝 릴 제조회사가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하디가 가지고 있던 특허는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1940년부터 하디사가 군수산업에 참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군용항공기의 엔진을 제작하고 있던 롤스로이스사의 하청업체로 지정되어 낚시와는 무관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재건에 힘을 쏟은 끝에 1951년이 되어서야 겨우 런던에 다시 매장을 열 수 있게 되었던 하디와는 달리 영국보다는 전쟁의 피해를 적게 받았던 프랑스와 프랑스 업체 미첼은 하디의 특허가 만료되는 1954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생산과 수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5년에만 미첼 300(Mitchell 300)을 미국시장에서 60만 대나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는데 인플레를 감안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릴 하나만으로 2천4백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에서 비롯되어 세계최초의 스피닝 릴은 미첼 제품이란 잘못된 이야기들이 생겨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밀물처럼 유럽의 릴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자 미국의 업체들도 시각을 돌려 스피닝 릴의 제조로 눈을 돌렸지만 자체 제작보다는 OEM 방식을 택했고 유일하게 직접 제작이란 길을 택한 업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펜(Penn)과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는 핀노어(Fin-Nor)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낚시용품 회사들 대부분은 유럽에 OEM을 맡겼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본으로 바꾸게 되어 1970년대~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판매되던 제품들 대부분은 Made in Japan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의 낚시용품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그 시작은 흔히 말하는 카피제품으로부터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최초의 스피닝 릴은 우에노정공에서 만든 올림픽81이란 제품으로 이것을 개발하게 된 동기를 들여다보면 앞으로 스피닝 릴 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의 약진(躍進)을 예상해볼 수가 있다.
1922년에 설립된 필라델피아의 릴 제조업체인 오션시티로부터 프랑스의 미첼 300(Mitchell 300) 복제품 1만 개를 주문받았던 우에노정공은 주문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태평양전쟁의 폐전으로 심각한 자원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재료를 구하지 못해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스피닝 릴의 제조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재료의 조달이 가능해지자 하프 베일 형식의 미첼 300을 카피한 것에서 발전하여 1954년 하디의 특허 만료와 함께 풀 베일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올림픽 81이란 제품이다.
이처럼 완벽한 카피제품으로부터 출발한 일본이 지금은 일본 국내생산이라고 하면서도 제3국에서 만든 부품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알리OO에서 일본 브랜드의 카피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중국업체들이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은 누구나 해봄직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