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용 릴

세계의 스피닝 릴② 이젠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의 스피닝 릴이란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다른 낚시용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일본산 제품이 유독 독과점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스피닝 릴의 기형적인 소비문화를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낚시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요인으로 작용하여 일본의 낚시용품들이 우리나라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거창하게 애국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만의 낚시문화와 역사의 체계적인 정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낚시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부닥치게 되는 난관은 제품을 생산하던 업체가 존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기 순으로 정리된 자료가 전무하다거나 생산했던 제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는 것을 꼽을 수가 있다.

“한국 최초의 낚시용 릴이 1978년에 출시되다”란 글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작년 11월에서야 국내 최초의 릴이라고 하는 바이킹 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일본의 전통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 대나무낚싯대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낚시문화는 정립할 수가 없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해 보인다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한국 대나무 낚싯대의 역사

 

일본의 다이와가 최초의 스피닝 릴인 “스피닝 1형”이란 모델을 출시한 것은 1955년, 시마노가 최초의 스피닝 릴 “덕스(DUX)”를 출시한 것이 1971년의 일이니 서울조구에서 순수한 국내기술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바이킹 시리즈를 출시한 1978년은 그리 늦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시장구조를 가지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는 누구의 책임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더라도 소비자인 낚시인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가 보면 그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음식도 편식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것처럼 특정국가의 제품만을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 대하여 사회에 공헌하라거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경영에 임해달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수입선다변화’란 말은 1977년에 일본을 겨냥해 만들었던 ‘수입선다변화제도’에 기인하고 있는 것인데 일면 국내경제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대기업의 수익창출에 큰 역할을 했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수입선을 다변화 하는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산업의 하나가 바로 낚시용품업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쳇말로 널린 게 스피닝 릴 업체인데 무엇 때문에 일본제품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지… “세계에서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업체가 널려있다고?”라고 반문할지도 모르는 업계 분들을 위해서 좋은 사례를 짚어보는 것으로 오늘의 얘기를 끝맺도록 하자.

스포츠용품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는 미국의 경우, 애비 앤 임브리(ABBEY & IMBRIE)란 회사에서 최초로 낚시용 릴의 상표등록을 한 1877년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600여 개의 미국회사 제품들이 상표등록을 하였는데 이것은 수천 가지 모델이 생산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스피닝 릴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국내업체들 모두가 스피닝 릴을 생산하는 라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롤모델로는 스포츠용품의 강자 나이키를 떠올려도 되고 의류제품으로 유명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를 생각하면 된다.

나이키는 이해가 가지만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스피닝 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시장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릴의 유통사업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자체상표를 붙인 제품 외에도 에드워드 폼 호프(Edward vom Hofe)가 설립한 회사의 제품을 비롯하여 하디 등, 당시에는 유명했던 낚시용품업체들의 제품을 유통하고 있었다.

누군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계는 넓고 스피닝 릴 생산업체는 억수로 많다.”라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면 자신조차도 그다지 재미가 없는 무미건조함을 느끼는데, 그래서 오늘은 살짝 양념을 더해본다.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낚시용품을 유통하고 있을 때 눈엣가시 같은 경쟁업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 VL & A(Von Lengerke & Antoinne)란 곳이었다.

VL & A의 릴

 

회사의 이름 ‘본 렌게르케 앤 안토인네’에서 보듯이 이 업체는 이탈리아 출신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1891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이곳은 1892년에 뉴욕에서 설립되었던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와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그야말로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VL & A이 그 유명한 알 카포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두 회사는 낚시용품의 유통도 하고는 있었지만 그보다는 총기류의 유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VL & A은 알카포네가 이끄는 폭력조직의 무기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2년 알 카포네가 앨커트래즈에 수감되는데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사건의 하나가 1929년 밸런타이데이에 일어나는데 1929년 2월 14일, 알 카포네의 조직원 5명은 7명의 상대조직원들을 기관총으로 살해한 이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는 ‘밸런타이데의 대학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에 사용된 총기류 가운데 2정이 VL & A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면서부터 VL & A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1938년에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가 낼름 집어삼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부가 사파리 의류를 단골로 구매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번창했으며 아래의 사진은 당시 플라이릴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던 탈봇에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의 이름을 붙여 생산했던 모델이다.

To be continued…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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