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2024년에 발행할 것이라며 발표한 새로운 지폐의 도안에 사용되는 인물의 초상화를 두고 특히 1만엔 권 지폐에 사용될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에 대하여 국내에서는 조선침탈의 주역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한말 한반도의 경제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비판받는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를 비롯하여 5천엔 권에 그려질 쓰다 우메코(津田梅子)와 1천엔권의 도안에 사용되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에 대하여 여기서는 언론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볼까 한다.
먼저 1만엔 권의 도안으로 사용될 예정인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의 경우에는 국내 언론에서도 그가 주장한 ‘개인의 이익=국가의 이익=공익’이라는 일본경제의 기틀이 된 ‘도덕경제합일설’을 설명하고 있는데,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가 주장한 ‘도덕경제합일설’을 보노라면 이율배반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며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가 주장한 ‘도덕경제합일설’은 1916년에 그가 쓴 책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에 등장하는 이념으로 논어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와 양립하는 이익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풍요를 위하여 사회에 환원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는 이 책의 내용에는 “부를 이루는 근원은 인의(仁義)와 도덕(道徳)으로써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쌓으면 그것은 지속할 수가 없다.”고 나오며 “도덕과 동떨어진 기만, 부도덕, 권모술수는 진정한 상술(商術)이 아니다.”는 경영철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정의와 도덕을 주창한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가 일본에서 추앙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10년 부흥계획을 세우고 수많은 기금을 모금하고 수많은 사업을 벌인 것에도 있다.
겉으로는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했다고 일본 내에서 평가받는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지만 “한 나라(조선)의 지폐로 일본의 민간은행권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이 행장으로 있던 ‘제일은행’에서 발행한 지폐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어 조선에서 유통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가 결코 도덕적이지 않고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하게 만든다.
※ 1873년에 시부사와 에이치가 설립한 ‘제일국립은행’은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민간기업이었으나 발권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1896년에 제일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일본 제일은행권 구권
한편 관동대지진의 발생을 두고 일본의 언론에서는 이기적이고 방만한 세상의 풍조가 불러온 대참사, 즉 천벌(천견: 天譴)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으나 현대산업문명과 부패한 부르주아를 비판하던 이런 풍조를 잠재운 사람이 바로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의 이런 면면은 인도양과 태평양에 대한 자유를 위협하는 남중국해에서의 군사거점화를 추진하는 중국을 견제한다고 하는 이른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Free and Open Indo- Pacific Strategy: FOIP)”을 이유로 우경화와 군국주로 회귀하는 아베정권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지폐 중에서도 최고가의 1만엔 권의 도안으로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은 1천엔 권의 도안에 사용될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에 대하여 알아보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는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인물이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장남은 1925년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둔 가장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살 연하의 게이샤와 동반자살을 시도하여 본인은 살고 22살의 게이샤만 죽는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의 가정불화와 아들의 이러한 일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는 개인연구소의 소장직을 제외한 모든 직에서 사임하게 되고 그가 죽고 난 뒤에는 받았던 남작의 작위마저 반납하기에 이르고 만다. 이런 일들이 만일 국내에서 일어났더라면 이런 사람의 초상화를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끝으로 5천엔 권에 사용될 쓰다 우메코(津田梅子)는 일본 여자교육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인데, 그녀가 2024년부터 새로운 지폐의 도안으로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의 초상화를 사용하기로 한 아베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교육 잘못 시켰어!”
몇 년 전에는 석문방조제에서의 광어낚시가 핫했었고,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주꾸미를 워킹으로 잡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5짜가 넘는 감성돔은 잡기도 쉽지가 않지만, 잡았다고 하더라도 몇 년이나 된 것인지 도통 그 나이를…
많은 물고기, 또는 큰 물고기를 잡는 것을 낚시인들은 조과(釣果)가 좋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조과를 높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