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남편을 구한 레지스탕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독일의 점령 하에 들어가면서 많은 프랑스인들이 수용시설에 감금되게 되는데 특히 유태인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1912년 프랑스의 “샤뜨네-슈흐-쎈느(Châtenay-sur-Seine)”에서 태어난 “루시 버나드(Lucie Bernard)”란 소녀는 성장하면서 소르본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대학을 마친 후에는 독일의 국경과 가까운 곳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남편이 될 “레이몬드 사무엘(Raymond Samuel)”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터진 전쟁으로 유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녀는, 대신 사무엘과 결혼을 하게 되고 반유대정책을 펴는 독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남편 레이몬드는 이름을 사무엘에서 오브락(Aubrac)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영화로 만들어지까지 한 그녀의 이름도 “루시 오브락(Lucie Aubrac)”으로 바뀌게 됩니다.
1940년 6월 22일 독일과 맺은 치욕스런 휴전협정의 제20조 “독일군의 전쟁 포로가 된 프랑스 군인들은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전쟁포로로 남는다.”는 조항에 따라 프랑스군으로 포로가 되어 있던 남편 레이몬드도 조만간 독일의 수용소로 향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루시는 남편을 탈출시키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루시가 몰래 숨겨간 약을 먹고 갑작스럽게 열이 심해진 남편 레이몬드는 그녀의 계획대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변장시킬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그녀와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도움으로 레이몬드는 무사히 병원을 탈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지하운동을 펼치던 레이몬드와 루시는 1942년이 되어 점차 상황이 악화되면서 남편 레이몬드는 게슈타포의 손에 다시 잡히게 되었고, 유대인임을 감추기 위해 이름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발각된 레이몬드는 동료와 함께 심한 고문을 당하게 되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함께 구금되었던 동료 Moulin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레이몬드가 수감되었던 “몽뤼크 감옥(Montluc prison)”은 나치가 레지스탕스 대원들이나 유대인들을 감금하고 수용소로 보내기 전에 심문하던 시설이었으나 실상은 고문과 총살이 무분별하게 자행되던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루시는 이곳에 수감되어 있던 남편이 곧 처형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는데 이번에는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그의 약혼자이며 결혼을 하겠다고 독일군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면서 접근을 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법률에 의하면 사형수라고 하더라도 처형 전에 결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1942년 10월 21일 게슈타포의 본부가 있는 건물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몽뤼크 감옥(Montluc prison)”으로 돌아가는 남편 레이몬드를 포함한 16명의 포로들을 사전에 매복해 있던 레지스탕스가 모두 구조하여 탈출시키게 됩니다.
성공적으로 탈출한 루시와 레이몬드는 프랑스를 빠져나와 영국으로 도피한 다음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다가 종전이 되어서야 귀국하게 되지만 레이몬드는 함께 잡혀 고문을 당한 끝에 세상을 떠난 Moulin을 게슈타포에 밀고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판명되었고 루시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1996년 명예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2012년 당시의 프랑스 대통령이던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남편 레이몬드 오브락을 “잃어버린 듯한 순간에 프랑스의 명예를 구한 사람, 저항의 역사에서 전설이 된 인물”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가장 암울한 시기에 나치의 야만에 저항할 힘을 가진 프랑스의 보편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 사람.”이란 평가를 하였습니다.
루시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남편 레이몬드가 이런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이런 루시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그녀가 1984년에 펴낸 회고록 “Ils Partiront Dans L’Ivresse: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떠날 것이다”를 바탕으로 1997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레이몬드와 루시는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인 캐서린(Catherine)의 대부는 프랑스의 유명한 정치인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전 대통령이었고 둘째 엘리자베스 (Elizabeth)의 대부는 베트남의 국부라고 칭송받는 호치민(Ho Chi Minh)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