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2009년 7월 2일, 마나부 쿠리타가 잡은 10.12kg(22lbs 4oz)의 배스(정확히는 라지마우스 배스)가 진정한 세계기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세계기록이 10.09㎏이었던 것에 비해 마나부 쿠리타가 잡은 것은 10.12㎏이었기 때문이다.
독도도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로서야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만 IGFA의 기록은 물고기의 크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게로 결정하며 그 차이가 56.7g(2oz)을 넘지 않으면 새로운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 마나부의 기록은 새로운 기록이 아니고 공동기록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만일 IGFA의 규정에 무게로 측정하여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길이로 측정하여 겨룬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다면 마누부의 기록은 절대 세계기록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나부 쿠리타가 잡은 것은 73.5㎝였지만 기존의 세계기록은 82.55㎝였기 때문이며 마나부가 잡은 배스의 공식적인 길이는 73.5㎝가 아니라 69.1㎝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나부 쿠리타는 일본에서는 배스낚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데 공동세계기록을 세우기 이전인 2008년 4월 6일에도 비와호(琵琶湖)에서 길이 70㎝, 무게 8.48㎏의 배스를 잡아 비와호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2009년 7월 2일 11시 30분경 세계기록을 세우는 배스를 잡을 때 마나부 쿠리타가 사용한 장비를 보면 로드는 뎁스 사이드와인더 돔 드라이버, 릴은 시마노의 안타레스 DC7, 라인은 도레이의 슈퍼하드 스트롱(25lb)이었다고 한다.
마나부 쿠리타가 잡은 세계기록의 배스
그러면 현대화된 태클로도 갈아치우지 못하고 공동세계기록에 머물게 만든 87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고 있는 배스의 세계기록 보유자는 누구인지를 알아보자.
조지 워싱턴 페리(George Washington Perry)가 1932년 6월 2일 잡은 10.09㎏의 라지마우스 배스는 세계기록으로 인정을 받았으면서도 그 진위여부에 대하여는 일부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의심을 사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지 페리가 잡은 것이라면 그가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진이 없다는 점과 조지 페리와 함께 낚시를 했다고 하는 잭 페이지(Jack Page)에 관한 사진도 없다는 점을 비롯하여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이 주최하던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서류를 보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하는 점 때문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은 당시에는 콘테스트 참가자들로부터 증빙할 수 있는 사진의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고, 조지 페리에 대한 자료는 외부작가에게 대여한 후 작가가 분실하는 바람에 보존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지 페리가 세계기록을 세운 배스를 잡을 때 사용하였던 루어를 제작한 크릭 첩 베이트(Creek Chub Bait Company)에서 1935년 6월 3일자로 조지 페리가 보낸 편지가 발견되고, 2005년에는 그의 지인들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이 발견되면서 조지 페리가 세운 세계기록에 대한 논쟁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
조지아 주의 텔페어 카운티(Telfair County)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청년 조지 워싱턴 페리(George Perry)가 20살이 되던 1932년 당시의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조지 페리의 가족 또한 식량난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1932년 6월 2일은 계속 내린 비로 인해 땅이 질척거려 경작을 할 수 없어 조지 페리는 친구인 잭 페이지(Jack Page)와 함께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몽고메리 호수(Lake Montgomery)로 낚시를 하러 나서게 되었다.
잭 페이지는 두 사람이 직접 만든 보트의 노를 젓고 조지 페리는 트루 템퍼(True Temper) 로드와 플루거(Pflueger)에서 만든 릴과 크릭 첩에서 만든 핀테일 샤이너(Creek Chub Fintail Shiner) 루어를 사용하여 낚시를 시작하였다.
Creek Chub Fintail Shiner
얼마 후 조지 페리는 입질을 느끼고 챔질을 했고 커버에 걸려 끌어내지 못할 것 같았던 배스를 무사히 보트 위로 올리는데 성공한다.
당시에는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대단한 대물을 낚았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마을인 헬레나에 있는 상점(J.J. Hall’s General Store)에 들러 길이를 재었는데 가게주인인 홀이 측정한 바에 따르면 길이가 82.55㎝, 둘레가 72.4㎝나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 조지 페리와 잭 페이지는 우체국에 있는 공인된 저울을 이용하여 무게를 측정하였고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사람이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의 콘테스트에 응모할 것을 권유하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 페리가 잡아온 알이 꽉 찬 암컷 배스는 그의 어머니가 요리하여 반쪽은 그날 6명의 식구들이 나누어 먹고, 나머지 반쪽은 다음날 저녁으로 먹었다고 한다.
조지 페리는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의 콘테스트에 참가한 결과 우승을 차지하여 새로운 로드와 릴 및 샷건 등 모두 75달러에 달하는 상품을 부상으로 받았는데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은 조지 페리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2년 뒤에 세계기록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 Stream)에 제출한 조지 페리의 서류 원본이 없다는 점과 증빙할 수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이유로 기록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는데 페리가 1935년 6월 3일자로 크릭 첩 베이트사에 보낸 편지가 발견되면서 서류에 대한 논쟁은 종식되었으며 편지의 원본은 현재 배스마스터(Bassmaster)의 편집자가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5년에는 페리 집안과 친분이 깊었던 존슨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던 사진이 제리 존슨(Jerry Johnson)이란 여성에 의해 공개가 되었는데 이 사진을 검토한 IGFA의 회원인 리 하워드(Lee Howard)와 잡지사 Florida Game & Fish의 편집장인 지미 제이콥스(Jimmy Jacobs)는 사진 속의 인물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조지 페리와 함께 낚시를 했던 잭 페이지인 것으로 보이며 사진 속에서 헬레나 우체국의 전경이 보인다는 점을 들어 조지 페리가 잡은 배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사진 속의 남자와 소년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조지 페리는 크릭 첩 베이트(Creek Chub Bait Company)에 보낸 편지에서 두 장의 사진을 언급했고 2005년에 공개된 사진 속의 인물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조지 페리는 아니며 아마도 잭 페이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잭 페이지(Jack Page)에 대한 자료는 1934년 일어난 텔페어 카운티(Telfair County) 법원의 화재로 소실되어 찾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사진 속의 어린이는 아마도 크기가 엄청난 배스를 보고 신기해서 다가온 마을의 소년이 아닌가 추측할 뿐인데 현재까지도 잭 페이지(Jack Page)와 사진 속의 소년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에 세계기록을 세운 조지 페리는 1974년 1월 21일 직접 조종하던 비행기가 앨라바마 주의 버밍엄 인근에 추락하여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IGFA가 인정하는 세계기록이면서도 아직까지 논쟁이 사라지지 않은 조지 페리의 기록은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로만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진 속의 어린 소년이었던 사람이 나타나 증언하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사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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