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IA가 은밀히 운용했던 RB-69A

미국 CIA가 은밀히 운용했던 RB-69A

1960년 3월 25일, 군산 인근의 산비탈에 미 공군기가 추락하여 탑승했던 14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 추락했던 기종은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미해군의 P2V-7 넵튠을 변형한 미공군의 RB-69A라고 알려졌었으나 사실은 미국 CIA가 운용하던 것이었다.

이에 관한 비밀은 2022년이 되어야 해제되지만 이미 그 이전에 관련 내용들은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었는데 오늘은 그중의 하나인 스컹크 웍스의 프로젝트(The Projects of Skunk Works)란 책을 통해서 미국 CIA가 한반도와 중국에서의 정보수집을 위해 은밀히 운용했던 항공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책을 쓴 스티브 페이스(Steve Pace)는 군용기와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2016년 12월에 최초로 발간되었으며 원제는 ‘The Projects of Skunk Works: 75 Years of Lockheed Martin’s Advanced Development Programs’이다.

책의 제목에 있는 스컹크 웍스(Skunk Works)는 록히드 마틴 연구소의 공식적인 별칭이며 이전에는 Lockheed Advanced Development Projects로 불리고 있었으므로 책 제목은 간단히 ‘스컹크 웍스의 75년 역사’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제2장을 보면 미공군의 RB-69A는 해군의 P2V-7 넵튠을 개조하여 1954년 4월 26일에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서 첫 비행을 마친 이후 그해 말까지 모두 5대의 RB-69A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P2V-7 넵튠

 

RB-69A

 

CIA가 운용하는 항공기는 CIA 소식임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에 국적표시 등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거나 아니면 아예 표시를 하지 않기도 했고 때로는 공군이나 해군 소속으로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RB-69A를 공군이 운용하는 것으로 위장하였다 한다.

1962년까지 CIA는 모두 7대의 P2V-7 넵튠을 해군으로부터 양도받았는데 모델에 붙어있는 7은 P2V 버전의 마지막 버전이란 것을 뜻하며 여기에 해군은 다목적용도로 사용된다는 뜻의 U를 붙여 P2V-7U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미해군의 P2V-7U은 다시 RB-69A란 제식으로 공군에 양도되는데 RB는 폭격기를 기반으로 하는 정찰기라는 의미라고 하며 다른 나라들을 속이기 위해 해군에서 공군으로 양도하고 운용은 CIA가 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던 것이다.

미 해군의 P2V-7과 RB-69A의 외관상 가장 큰 차이는 P2V-7은 날개 끝에 연료탱크가 있지만 RB-69A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CIA의 RB-69A는 구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2대는 서독의 비스바덴(Wiesbaden)에 배치하고 다른 2대는 당시의 중공을 감시하기 위해 대만의 신주공군기지(Hsinchu Air Base)에 배치하여 제34 비행대의 블랙팀이 운영하도록 하였다.(대만 공군의 제34 비행대는 검은 박쥐 비행대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 뒤 1959년에 CIA가 유럽에서 비밀리에 운용하던 항공기 자산을 줄이면서 2대의 RB-69A를 포함하여 7대 모두를 대만에서 운용하였으며 공대공 미사일까지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형식적으로는 대만 공군에서 운용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CIA의 항공자산이었던 RB-69A는 전체 7대 중 5대가 추락 또는 격추되었는데 제일 첫 번째로 추락했던 것이 1960년 3월 25일 군산 인근의 산비탈에 추락한 것으로 대만의 신주공군기지(Hsinchu Air Base)를 출발한 RB-69A가 저공으로 페리비행(Ferry flying)을 하는 도중에 추락하여 탑승객 14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두 번째는 1961년 11월 6일 산동성 상공을 비행하던 도중 인민해방군이 쏜 SA-2(SA-75 DIVA)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되어 14명이 사망하였고, 세 번째는 1962년 1월 8일 인민해방군의 MiG-17에 의해 서한만(西韓灣) 상공에서 격추되어 14명의 승무원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군산 인근에서의 추락사고 1건을 비롯하여 모두 4대가 격추되어 전체 7대의 70% 이상인 5대의 RB-69A를 잃어버린 CIA는 1964년에 작전을 종료하게 되는데 CIA가 수행했던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와일드 체리(Project Wild Cherry)이다.

그러나 CIA는 다시 액시얼 프로젝트(Project Axial)라는 이름의 작전을 바로 이어서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4기의 AIM-9 사이드와인더로 무장한 P-3A 2대를 대만공군이 사용하는 형식으로 운용하였다. 그래서 EP-3B는 대만 공군 제34 비행대의 별칭인 검은 박쥐 비행대라는 이름을 따서 Bat Rack이라고도 불린다.

 

냉전시대로의 회귀라고까지 말하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지금, 우리가 모르는 모습의 CIA 항공자산이 한반도 상공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적국의 정찰이 아니라 우방국의 기밀을 수집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