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타드(Mustard)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겨자씨로 만들어 매운맛을 내는 샐러드드레싱이지만 스펠링에서 r이 빠진 머스타드(Mustad)는 낚시에서 사용되는 훅(Hook)을 의미한다.(정확히는 훅이 아닌 제조회사의 이름이다.)
루어낚시에 사용하는 훅의 대명사와도 같은 머스타드(Mustad) 훅을 만드는 회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족한 기술과 산업인프라 속에서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과 혁신을 거듭하였으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단순히 루어낚시용 훅을 만드는 낚시용품 회사로만 알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이 회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6륜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으며 마가린 제조공장을 비롯하여 금속, 식품, 기계공업 등 다각화된 사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했던 가족회사다.
19세기 초 노르웨이는 산업 인프라의 태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들을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낚시용 바늘을 만드는 회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140㎞ 떨어진 예비크(Gjøvik)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한스 스키켈스타트(Hans Skikkelstad)라는 사람이 1832년에 설립한 회사가 머스타드 훅의 출발점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하게는 3대 사장을 맡았던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1832년 한스 스키켈스타트(Hans Skikkelstad)가 세운 회사는 못과 말굽에 사용하는 편자 등의 소형 금속제품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편자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기계를 개발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유럽 각국으로의 수출을 통해 사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경찰로 재직하고 있던 한스 스키켈스타트의 사위인 올레 머스타드(Ole Mustad)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명을 이전의 ‘Brusveen Spigerog Staltradfabrikk’에서 ‘O. Mustad’로 변경하였는데 그의 아들인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가 합류하면서부터 이름을 ‘오 머스타드 앤드 선(O. Mustad & Søn)’으로 바꾸게 된다.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
올레 머스타드(Ole Mustad)가 경영하던 회사는 예비크(Gjøvik)의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이에 따라 회사는 기존의 소형 철물과 금속제품의 생산에서 업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의 하나로는 그로부터 100년이 넘게 운영하였던 버터산업 분야가 있다.
1905년의 머스타드 마가린 광고
그러나 제3대 사장인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가 회사를 이끌던 시기는 1873년대부터 시작되어 1890년대까지 장기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을 휩쓴 심각한 불경기인 대불황(Great Depression)의 시기였고 이때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분야가 바로 낚싯바늘의 제조였다.
이를 두고 머스타드의 후세들은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의 뛰어난 선견지명 덕분이었다고들 말하지만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어도 지금의 삼성전자가 있기에는 반도체를 주력사업으로 선정한 이건희란 인물이 있었던 것과 같이 지금의 머스타드 훅이 있기까지에는 한스 머스타드란 사람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스 머스타드 외에 마티아스 톱(Mathias Topp)이란 인물을 빼놓고는 머스타드 훅(Mustad Hook)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정확한 연도를 알지는 못하지만 1860년대에 입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티아스 톱(Mathias Topp)은 이전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생산하던 낚싯바늘을 자동으로 생산하는 기계를 개발하였는데 그때가 1877년이었다.
한쪽으로 와이어를 집어넣으면 반대쪽에서 낚싯바늘이 만들어져 나오는 기계를 개발하면서 경쟁업체들의 모방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청사진을 암호화하고 기계의 위치를 비밀에 부치는 등 극도로 보안의 유지에 힘을 기울였다.
마티아스 톱(Mathias Topp)과 그가 개발한 기계
그러나 마티아스 톱(Mathias Topp)이 개발한 낚싯바늘 제조기계는 세밀한 부분의 기술이 필요하였고 이 기계의 사업성과 발전가능성을 확신했던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는 헤인즈 헨리(Haynes Henry)를 비롯하여 영국으로부터 많은 기술자들을 영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낚싯바늘의 최대소비자들이었던 어부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 이전까지 사용하던 낚싯바늘을 쉽게 바꾸기를 꺼렸지만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이란 사실은 그들도 끝까지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더하여 회사의 직원들은 전세계를 발로 누비며 어떤 낚싯바늘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면서 샘플을 수집하였는데 당시 전세계에서 6만 개 이상의 낚싯바늘을 수집하여 생산에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세계 생산량의 50%를 머스타드 훅이 차지하게 되었으며 사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제품의 포토폴리오에만 105,000개의 제품이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비크(Gjøvik) 소재의 머스타드 공장의 모습
머스타드 일가를 제외하고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마티아스 톱(Mathias Topp)이란 인물임은 맞지만 그가 만든 낚싯바늘을 제조하던 기계도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 사장이 없었더라면 크게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유럽에 대불황이 휩쓸던 시기, 한스 머스타드(Hans Mustad)는 유럽 전역에서 300개 이상의 경쟁업체들을 인수하였고, 1920년대 중반에는 13개국에서 8천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여 전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머스타드 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역사를 지닌 머스타드 훅은 6대 사장인 한스 홀스 머스타드(Hans Holth Mustad)에 의해 낚싯바늘 사업이 매각되었는데 당시에는 퓨어피싱이나 라팔라에서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실제로는 노르웨이의 투자회사인 뵈레 노르트하임 라르센(Børre Nordheim-Larsen)에 인수가 되었고 그 뒤인 2017년에는 북유럽의 사모펀드인 베르다네 캐피털(Verdane Capital)에 인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877년 10월 16일에 예비크(Gjøvik)에서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한 머스타드 훅은 1972년에 싱가포르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한때 1,400여 명에 이르렀던 예비크(Gjøvik)의 근로자들은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뵈레 노르트하임 라르센(Børre Nordheim-Larsen)에 인수된 이후인 2011년 12월에는 18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35대의 나머지 기계가 중국공장으로 이전되면서 예비크(Gjøvik)에는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대의 기계만 남게 되었다.(사진은 예비크(Gjøvik)에서 생산된 마지막 제품을 들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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