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독일 최고의 저격수,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저격수들이 활약한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코 소련을 들 수 있는데 이번에는 가장 많은 소련군을 저격하여 2차 대전 뿐만 아니라 독일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로 이름을 남긴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연합국의 일원이 아닌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전사(戰史)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도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진다면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아돌프 히틀러는 1938년 오스트리아를 독일제국에 합병시킴으로써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가 되었는데 형식적이나마 오스트리아의 국민투표를 거치기는 하였으며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독일제국의 하나의 주인 오스트마르크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오스트리아 티롤주에 있는 브릭센 임 탈레(Brixen im Thale)라는 산악 마을에서 1924년 12월 23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가 태어났다.

브릭센 임 탈레(Brixen im Thale)

농부이면서 사냥에 능했던 아버지 시몬 헤체나우어(Simon Hetzenauer)와 어머니 막달레나 헤체나우어(Magdalena Hetzenauer) 사이에서 태어난 3남 1녀의 셋째였던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아버지로부터 사냥하는 법을 배웠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Austro-Hungarian Army)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철십자훈장을 받았던 삼촌으로부터는 군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알프스의 산과 계곡에서 사냥을 통해 자연스럽게 위장술을 익혔던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17세였던 1942년 9월에 육군에 입대하게 되었으나 알프스산양 샤무아(chamois)를 잡던 민첩함과 뛰어난 사격술은 그를 단순한 산악경보병인 게비르크스예거(Gebirgsjäger)에 머물게 하지 않았고,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저격훈련을 마친 다음 저격병으로 복무하게 만든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는 제3 산악경보병사단, 제144 산악경보병연대에 배속되어 공식적으로 저격수로 활약하게 되는데 주로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공격해오는 소련군을 저격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는 2가지의 소총을 사용했는데 가장 즐겨 사용했던 것은 줄여서 Kar98k라고 하는 Mauser Karabiner 98k의 저격용 소총으로 6배율의 자이스 스코프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4배율의 스코프가 장착된 게베어43(Gewehr 43)은 주로 근거리에 위치한 목표물들을 저격하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Kar98k

 

Gewehr43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의 주요목표물은 산악여단의 포병을 노리는 소련군의 기관총 사수와 저격수들이었으며 특히 기관총 사수와 소련군 지휘관을 저격하는 것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1944년 7월 저격훈련을 마치고 8월부터 저격수로 활약했던 그는 1944년 8월부터 1945년 4월까지 9개월 동안에 345명의 소련군을 사살하여 1945년 4월 17일에는 일반 독일군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기사십자 철십자장(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을 수여 받는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5년 5월에는 소련군의 점령과 함께 전쟁포로의 신분이 되어 수용소에 수감되는데 2차 대전 동안에만 약 3백만 명에 달하는 독일군들이 소련의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거의 1/3에 가까운 수가 수용소에서 사망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는 5년의 시간을 끈질기게 이겨내고 1950년에 석방되어 그리운 고향, 브릭센 임 탈레(Brixen im Thale)로 귀향하게 된다.

고향에 돌아와 마리아란 여성과 결혼하고 목수로 생활했던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전쟁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생활하다가 2004년 10월 3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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