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 여가수의 이름이 실검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세인들의 입에 암페타민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을 막론하고 병사들에게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던 약물이 암페타민과 메스암페타민이었고 독일군에게 공급을 명령했던 히틀러 또한 약물에 중독되었었다.(정확히는 필로폰이라는 메스암페타민에 중독)
지난 번 “마약으로 물든 베트남전쟁”이란 포스팅에서 미군은 지구력 강화와 불안 및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암페타민을 비롯한 각종 진정제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였고 미 하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모두 2억2천5백만 통의 각성제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전쟁을 수행하는 각개병사들에게 약물을 보급한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887년 유대인 출신의 루마니아 화학자 라자르 에델레아누(Lazăr Edeleanu)가 베를린 대학에서 최초로 암페타민의 합성에 성공한 이래 벤제드린(Benzedrine)이란 상표로 상품화 되면서 천식이나 우울증의 치료에 사용되던 암페타민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연합군에 의해서 병사들에게 보급이 되었다.
라자르 에델레아누(Lazăr Edeleanu)
벤제드린(Benzedrine)
그러나 독일군 병사들에게 보급되었던 것은 이보다 더 심각한 메스암페타민이었는데 이른바 히로뽕이라고도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은 1888년 천식치료제인 마황으로부터 에페드린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일본 도쿄대학의 나가이 나가요시(長井長義)가 발견한 이후 1919년에 그의 제자인 오가타 아키라(緒方章)가 결정화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결정화에 성공한 메스암페타민은 1938년부터는 독일의 제약회사 테믈러 베르케(Temmler Werke GmbH)에 의해 페르비틴(pervitin)이란 이름으로 출시되어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메스암페타민의 부작용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고, 독일군에게 정식으로 보급되었던 것은 1939년 폴란드 침공 때부터였다.
페르비틴(pervitin)
암페타민이나 메스암페타민을 막론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약물을 일반 병사들에게 보급했던 것은 독일군이 먼저였으나 연합군이 사용한 것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연합군 중에서 암페타민을 먼저 사용했던 것은 독일군의 잠수함을 수색하던 영국공군의 정찰병들이었다. 장시간에 걸쳐 온 신경을 기울여 독일군의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던 병사들이 암페타민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로는 폭격기의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공식적으로 보급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군이 공식적으로 암페타민을 보급한 것은 1942년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가 치러지는 기간 동안 영국의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이 1일 20㎎의 암페타민 5일치를 병사들에게 보급하도록 지시한 것이 최초였고, 미군은 1943년 2월 육군군수처(SOS: Services of Supply)에서 하루에 5㎎의 벤제드린(Benzedrine)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발표를 하면서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가 즉시로 50만 정을 주문하여 북아프리카의 부대에 보급하였던 것이 최초다.
엘 알라메인 전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롬멜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을 텐데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는 독일의 에르빈 롬멜을 소재로 하여 1951년에 개봉한 영화 The Desert Fox(사막의 여우 롬멜)가 바로 이 전투를 무대로 하고 있다.
에르빈 롬멜
연합군이 암페타민을 보급했던 것과는 달리 독일군이 보급했던 것은 히로뽕이라고도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이었고 날이 갈수록 중독으로 인한 심각성이 커지자 1939년 폴란드 침공 때부터 보급하기 시작했던 것을 1941년 봄부터는 중지하게 된다. 그러나 병사들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금지했던 것은 아니었고 보급만 중단하였다.
1939년 가을 폴란드 침공에 나선 독일군은 운전병들에게 메스암페타민인 페르비틴(pervitin)을 보급하였는데 정신적·육체적으로 피로한 상태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페르비틴(pervitin)의 효능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1940년 프랑스 침공에 나서면서는 3,500만 개의 페르비틴(pervitin)을 병사들에게 보급하였다.
독소전쟁 당시 페르비틴(pervitin)을 복용했던 병사들을 관찰한 군의관의 증언에 따르면 “폭설과 영하 30℃의 추위 속에서 6시간의 행군으로 병사들의 피로는 극에 달하고 사기는 저하되었으며 급기야는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부는 사망했다. 그러한 병사들에게 페르비틴(pervitin)을 나누어주자 30분이 지나지 않아 기력을 회복하였고 집중력과 판단력이 회복됨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병사들에게서 중독증상과 약물복용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1941년 봄부터는 페르비틴(pervitin)을 마약으로 규정하고 공식적인 보급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를 비롯하여 일반보병에까지 널리 보급되었던 페르비틴(pervitin)은 탱크 운전병들에게는 탱크 초콜릿(Tank-Chocolates)이라는 뜻의 판처쇼콜라더(Panzerschokolade)란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판처쇼콜라더(Panzerschokolade)
버닝썬 사건으로 촉발된 연예계의 마약과 경찰의 유착의혹에 대하여 명운(命運)을 걸겠다고 했던 경찰이 이번에는 명예(名譽)를 걸고 모 연예기획사의 의혹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목숨(명운)을 걸고도 밝히지 못한 것을 명예를 건다고 밝힐 수 있을까?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집단의 공허한 메아리와 함께 이 시기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을 보면서 그냥 암페타민과 메스암페타민이 2차 대전을 통해 보급되었던 역사를 한 번 살펴보았다. 멍~멍~
원투낚시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삼각대를 받침대로 사용하거나 백사장에서는 샌드폴을 사용하므로 릴을 바닥에 놓을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낚시를 소재로 하는 각종 방송프로들은 낚시인구의 증가에 기여를 하였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