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도구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에서 특히 낚싯줄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는 것은 주된 낚싯줄의 재료로 천연섬유를 이용하였기 때문인데 특히 한국의 낚싯줄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옛 문헌들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한 가지를 예로 들면 그나마 낚시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는 남구만(南九萬)의 약천집(藥泉集) 제5권에 있는 조설(釣說)을 보면 낚싯바늘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주부들이 사용하는)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들었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 금속재질의 낚싯바늘이란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이며 그 연대(年代)는 서두에서 ‘경술년(庚戌年: 1670년, 현종 11년)’이라고 밝히고 있는 창작연대를 보고서 1600년대에 금속으로 된 낚싯바늘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1600년대의 초반부터 금속성분의 낚싯바늘을 사용하였는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사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낚시에 관한 자료가 많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는 고려(高麗) 후기에 중국에서 유교(儒敎)가 전래되면서부터 이루어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사회계급제도, 정확하게는 신분차별제도라고 해야 맞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1500년대~1600년대의 낚시에 대한 자료들이 아주 많이 남아서 보존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낚시문화와 역사는 대부분 그림이나 한시(漢詩)를 통한 유추가 많다 보니 하나의 산수도(山水圖)를 보고서도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다” “아니다. 민물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는 등으로 의견이 나뉘고 있는 형편이며 이런 식으로 그림을 보고 장비와 채비법을 유추하다 보니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정확한 고증(考證)의 단계를 밟지 않은 것들이 “한국낚시의 역사”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래의 현진(玄眞)이란 사람이 그린 조어도(釣魚圖)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그림인지, 아니면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저는 바다낚시라고 봅니다만)
다시 낚싯줄의 역사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중국의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에도 비단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낚싯줄로 사용된 천연재료로는 산누에고치로 켠 천잠사(天蠶絲)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이미 삼한시대부터 양잠(養蠶)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초고왕(AD 199)때 양잠과 직조법을 일본에 전파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高麗) 인종 5년(1127)에는 송나라의 손광현이 편찬한 잠서(蠶書)를 임경화(林景和)가 이두로 풀이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농업서적인 잠경주해(蠶經註解)를 펴내어 누에치는 법을 보급하였다는 것을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누에고치로부터 뽑은 실을 낚시에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그 어디에도 역사적인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천잠사를 이용한 낚싯줄에 대한 자료가 많이 보존되고 있음은 부러운 일이기도 하면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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