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국군의 날에 생각하는 지그프리드 라인

용을 죽인 피로 목욕을 하고 나서 무협지에 나올 법한 금강불괴의 몸을 가지게 된 지그피리드는 목욕하는 도중에 날아온 나뭇잎 한 장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등에 붙는 바람에 그곳만 용의 피를 적시지 못해 취약한 부분이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는 신화 “니벨룽의 노래”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지그프리드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건설했던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아픈 상흔으로 후대에 교훈을 주는 유물로 남아있는데 오늘 제7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이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연합군에게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이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을 우회하여 독일군을 공격하는 작전이었던 “마켓가든 작전”은 얼마나 실패한 작전이었는지 다리 하나를 넘기 위해 크나큰 희생을 치루는 바람에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도 했습니다.

원래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이 프랑스에 건설했던 “힌덴부르크 라인”의 일부였던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은 총 연장 630km에 18,000여 개에 달하는 벙커와 수많은 용치(龍齒, Dragon’s Teeth)로 이루어져 있는데 히틀러가 1939년 5월 20일 현장에서 작업 중인 병사들과 근로자들에게 보내는 지휘서신에 “Westwa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부터 “Westwall”이라고도 알려졌으나 연합군들은 이 선을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이라고 불렀습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건설된 이 라인은 독일의 아우토반 건설에도 참가하였던 프리츠 토트(Fritz Todt)의 지휘로 추진되었는데 히틀러는 이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을 건설하는 작업을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알게 되면 독일의 영토확장에 대한 야심을 알아차리게 될까 우려하였기 때문이며 2년 동안 비밀스럽게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위장망과 갈대를 덮고서 참호를 건설하는 등 작업을 하였으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절 발표를 하지 않았으나 거대한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게 되자 비로소 1938년에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을 세상에 밝히게 됩니다.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은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보다도 더 길이가 길었으며 벨기에의 국경 부분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던 독일군 지휘관들은 이런 단점을 없애기 위해 마지노선보다도 더 길게 방어선을 연장하여 구축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기만전술을 사용하여 국경선이라는 의미로 라인(Line)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그 실체는 깊은 호를 가진 이중으로 된 요새화된 형태였으며 공격에 취약한 지점에 있는 참호의 주변으로는 더 깊게 라인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이런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아무도 독일을 침공할 계획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작업을 감행하였다면서 돈낭비, 시간낭비라고 폄하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에 따라 배치되었던 장비와 무기들을 철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다시 방어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 오랜 기간의 방치로 허물어지고 녹슨 시설을 보수하고 다시 무기를 배치하기 위해 애초 백만 명의 인력을 동원할 계획이었으나 1/3 정도인 36만 명의 연인원을 동원하여 보수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건설현장을 순시 중인 히틀러

 

연합군이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을 뚫기 위해 치른 희생은 아주 큰 것이었는데 시간상으로는 거의 6개월이 소요되었고 연인원 25만에 달하는 연합군 병사들의 사상을 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지그프리드 라인(Siegfried Line)”은 무너지게 되고 전쟁은 끝을 맺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회색빛 잔해들은 냉혹한 당시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70주년 국군의 날을 맞은 오늘 우리의 강토를 가로지르고 있는 휴전선도 빨리 사라지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낚만 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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