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줄의 역사-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

낚싯줄의 역사-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

위의 사진은 1700년대 중후반~18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사용되던 도구함인데 그 속에 말총으로 만든 낚싯줄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 속 낚싯줄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사용하던 말총으로 만든 낚싯줄이며 조지 워싱턴은 낚시를 즐겨 하여 상어를 낚시로 잡기도 하고 오하이오에서는 메기낚시를 즐겼으며 1787년 여름, 55명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미국헌법을 제정하는 중의 휴회기간 동안에도 송어와 농어낚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낚싯줄로 사용된 재료들은 나일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천연재료들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품질과 성능이 저하되는 경연열화가 진행되고 오래 보관하기도 어려워 보존되어 있는 것이 드물고, 특히 한국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곳을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낚싯줄의 역사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지난번에 “낚싯줄의 역사-천잠사(天蠶絲)”에서 소개한 천잠사(天蠶絲)는 견사(絹紗)나 말총의 역사보다는 짧습니다. 즉 견사나 말총을 낚싯줄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천잠사(天蠶絲)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천잠사(天蠶絲)와 견사(絹紗)가 산누에나방으로부터 만든다는 점은 같지만 견사는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뽑고 천잠사(天蠶絲)는 고치가 되기 전의 유충의 분비선으로부터 실을 뽑는다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견사를 포함한 섬유소재의 낚싯줄에 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계획입니다만 한국에서는 칡뿌리를 낚싯줄에 이용하였다는 단서도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말총을 이용한 낚싯줄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플루타크 영웅전’으로 유명한 로마의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플루타크는 영어 발음)는 말총으로 만든 낚싯줄에 대하여 “최대한 매듭을 줄인 백마의 털이 좋고 같은 백마라도 종마의 털로 만든 것이 암말이나 거세마의 털로 만든 것보다 강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종마의 털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주로 암말의 털을 재료로 사용하였는데 플루타코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암말의 꼬리털이 좋은 이유는 항상 소변에 의해 젖어 있기 때문이다.”

 

말총을 사용한 낚시에 관한 자료를 한국의 옛 문헌들에서는 정확한 내용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산천어낚시에는 말꼬리의 털을 3개 꼬아 사용하였다거나 은어낚시에는 5개를 꼬아서 그 길이가 2~3척이 되도록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1884년에는 말총으로 만든 낚싯줄의 강도를 시험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일본의 재래종 말들은 꼬리털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하니 낚싯줄로 사용하기 위해서 길이를 길게 하려면 여러 가닥의 말총을 연결해야만 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실제 말의 꼬리털의 단면은 원형이 아니라 평평한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한 마리의 말에서도 꼬리털의 굵은 정도와 길이는 제각각이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3 정도이며 두께는 현재의 규격으로 보면 0.8~1.2호 정도이며 강도는 나일론 라인 0.4호 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929년 일본의 낚시용품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백마의 털이 흑마의 털보다 다소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말총을 낚싯줄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는 1557년에 영국인 윌리엄 사무엘(William Samuel)이 출간한 낚시의 기술(Art of Angling)이란 책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문답식으로 낚싯줄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데 “거세마의 털로 만든 낚싯줄과 양모(羊毛)로 만든 것은 물을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원줄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목줄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3개 이상의 털을 꼬아서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런 말총과 견사와 같은 섬유소재의 낚싯줄을 사용하다가 그 다음에 천잠사(天蠶絲)를 이용한 낚싯줄을 사용하고 이어서 나일론이 발명되면서 나일론 낚싯줄로 넘어가는 것이 대체적인 세계의 흐름인데 이런 내용에 관한 것들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은 언제나 느끼는 안타까움입니다.

다행히도 단양에 낚시박물관이 있어 그나마 명맥은 유지되고 있지만 주로 민물 견지낚시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한국낚시의 역사에 대한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